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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대 시인을 찾다가 우연히 다운받은 e북이다.



내 마음을 촉촉하게 만든 단어들로 가득한 시집이다.

e북이 아니라 종이책을 소장하고 싶다.

메모한 시의 구절들은 아래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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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 비가 내린다 
빗물을 흠뻑 빨아들이고 
사막은 여전히 사막으로 남아 있다 
받아들일 줄은 알고 
나눌 줄은 모르는 자가 
언제나 더 메말라 있는 

초여름 
인간의 사막

우리가 나뭇잎에 앉은 먼지를 닦는 일은
우리 스스로 나뭇잎이 되는 일이다
우리 스스로 푸른 하늘이 되는 일이다
나뭇잎에 앉은 먼지 한번 닦아주지 못하고
사람이 죽는다면
사람은 그 얼마나 쓸쓸한 것이냐

결혼이 사랑을 필요로 하는 것처럼 사랑도 결혼이 필요하다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한다는 것이며 
결혼도 때로는 외로운 것이다

가끔 나무를 껴안고 나무가 되는 사람과 결혼하라 
나뭇가지들이 밤마다 별들을 향해 뻗어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과 결혼하라

내 한평생 버리고 싶지 않은 소원이 있다면 
나무들의 결혼식에 초대받아 낭랑하게 
축시 한번 낭송해보는 일이다 (...)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누구나 바닷가 하나씩은 언제나 찾아갈 수 있는 
자기만의 바닷가가 있는 게 좋다 
잠자는 지구의 고요한 숨소리를 듣고 싶을 때 
지구 위를 걸어가는 새들의 작은 발소리를 듣고 싶을 때 
새들과 함께 수평선 위로 걸어가고 싶을 때 (...)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걸어가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 검은 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별똥별이 떨어지는 순간에 
내가 너를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떨어지는 별똥별을 바라보는 순간에 
내가 너의 눈물을 생각하는 줄 
넌 모르지 
내가 너의 눈물이 되어 떨어지는 줄 
넌 모르지

그대와 만장굴에 갔을 때 
왜 끝없이 굴 속으로 걸어 들어가 서귀포 앞바다에 닿지 못했는지 
그대와 천마총에 갔을 때 
왜 천마를 타고 가을 하늘 속을 훨훨 날아다니지 못했는지 
그대와 감은사에 갔을 때 
왜 그대 손을 이끌고 감은사 돌탑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는지

네가 준 꽃다발을 
외로운 지구 위에 걸어놓았다 
나는 날마다 너를 만나러
꽃다발이 걸린 지구 위를 
걸어서 간다

사랑했던 첫 마음 빼앗길까봐 
해가 떠도 눈 한번 뜰 수가 없네 
사랑했던 첫 마음 빼앗길까봐 
해가 져도 집으로 돌아갈 수 없네

가난한 윤동주의 서시를 읽는다 
갈참나무 한 그루가 기차처럼 흔들린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인가 
사랑한다는 것은 산다는 것인가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눈길에 난 발자국만 보아도 
서로 사랑하는 사람의 발자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배고픈 쓰레기통들이 늘어나면 날수록 

나는 쓰레기통끼리 서로 체온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쓰레기통끼리 외로움을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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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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