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부제는 '시간과 미래를 바라보는 관점을 바꿔야 하는 이유'이다.

긴 호흡에 대한 여럿 생각에 잠겨있던 차에, 책 제목을 보고 이끌렸다.

교보문고 홈피에서 발췌한 책 속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
1700년대, 정치사상가 에드먼드 버크는 그렇게 썼다. “사회는 현세대들뿐만 아니라 현세대, 구세대 그리고 미래 세대들 간의 파트너십이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세대 간 파트너십이 붕괴되고 있다. 만약 우리 후손들이 현세대의 가장 해로운 습관을 진단하게 된다면, 위험천만한 새로운 유형의 단기주의, 특히 서구세계의 단기주의를 지목할 것이다. 21세기 초반인 현재 모든 관심이 ‘지금’에 쏠려 있다. 과거나 미래는 현재의 사건들을 통해서만 인식할 수 있다. 세계는 정보의 포화상태가 되었고 생활수준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거기다가 새로운 뉴스거리, 정치 용어, 분기 실적 이외의 다른 주제로 관심을 돌리기가 힘들다.
_본문 9쪽, ‘더 멀리 보기’ 에서

예를 들면, 인류는 여전히 여기 지구에 살고 있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우리는 어떻게 진화할 것인가? (그 답은 기술에 달려 있다.) 우리는 어디에 살고 있을까? (기후변화가 도시, 국경 그리고 국를 바꿔놓을 것이다) 자연이라는 게 남아 있기는 할까? (남아 있겠지만 고도로 진화한 비둘기나 쥐들의 등장을 예상해야 할 것이다.) 언어는 어떻게 진화할까? (1000년 정도 지나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언어로 바뀔 것이다.) 그리고 미래의 고고학자들은 우리에 관해 무엇을 알고 있을까? (다들 예상하다시피 그들은 우리가 남긴 쓰레기에 가장 큰 관심을 보일 것이다.)
_본문 13~14쪽, ‘더 멀리 보기’ 에서

장기적 관점의 일환으로 최근 부상한 ‘장기주의’의 윤리적 접근법도 소개할 예정이다. 장기주의는 미래에 대한 인류의 도덕적 의무를 다시 생각해보라는 일종의 요청으로, 복잡한 산술을 이용해 미래 세대의 규모를 추정한다. 이러한 시각은 아득히 먼 미래의 궤적의 관점에서 볼 때, 인간이라는 종이 그 궤적의 그저 시작 단계에 서 있을지 모른다고 가정한다.
_본문 17쪽, ‘더 멀리 보기’ 에서

미래를 회의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면 근시안적인 허무주의를 낳을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종말이 다가오면 세상의 끝인 양 파티를 즐기거나 종말을 막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고 싶다는 유혹에 빠진다. 기후변화의 맥락에서 과학자 마이클 E. 만은 이를 ‘기후종말론’이라고 한다. 기후종말론은 통제할 수 없는 기후변화의 위협을 줄이려고 행동하기에는 이미 너무 늦었기에 무의미하다고 믿는 위험한 생각을 의미한다.
_본문 30쪽, ‘ 장구한 시간 속에서의 짧은 역사’ 에서

이 시기에 과학적, 지적으로 과거와 미래에 대한 시간의 길이를 확장함으로써 우리 자신과 지구에 대한 이해의 지평을 크게 확장하는 계기가 마련되었다. 특히 다윈은 진화론을 제시할 수 있었고, 인간을 중심이 두지 않는 자연계의 시간에 대해 깊은 이해를 얻을 수 있었다. 1859년에 출간된 ⟪종의 기원⟫에서 다윈은 “물론 현재까지 알려진 이 세계의 전체 역사만 해도 우리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긴 시간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최초의 인간이 창조된 이후 흘러온 오랜 시간과 비교되어 아주 짧은 찰나의 시간으로 인식될 것이다. 먼 미래에 나는 훨씬 더 많은 중요한 연구를 위해 들판에 나가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한편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지구의 오랜 시간이 밤하늘에 모조리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이가 들어서 허셜은 한 지인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제까지 나는 그 어떤 사람들보다 훨씬 더 먼 우주를 내다봤네. 내가 본 별들의 빛이 지구에 도달하는 데 2백만 년은 걸렸을 걸세. 물론 난 이 말을 입증할 수 있네.” 이 지인은 바로 시인 토머스 켐벨이었다. 이 시인은 대화하는 동안, 시간에 대해 할 말이 있었던 듯 보인다. 그는 후일 “그 순간 나는 거짓 없이 정말로 초인적인 지성과 대화를 나누는 듯한 느낌이었다. 허셜이 떠나고 나서 나는 뭔가를 극복한 양 한껏 고무되었다… (그 순간은) 내 인생에서 손에 꼽을 만큼 굉장히 흥미로운 순간이었다”라고 썼다.
_본문 43쪽, ‘ 장구한 시간 속에서의 짧은 역사’ 에서

21세기 자본주의에 내재된 많은 관행과 눈에 보이지 않는 문화적 관습이 기업, 투자자, 개인을 압박해 단기적인 관점에서 결정을 내리게 만들고 있지만, 중요한 것은 어떤 한 행위자만을 원흉으로 꼽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이러한 시간적 압박들이 현대 자본주의, 특히 서구 자본주의를 지배하게 됐는지를 이해하려면 시점을 확대해 그 안의 모든 구성 요소들, 즉 주주, 기업, 규제기관, 펀드매니저, 입법기관 등이 어떻게 상호 작용하고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자본주의는 반드시 태생적으로 근시안적일 필요는 없다. 그러나 지난 100년간 수많은 행위자가 관행, 유인책 그리고 억제책들을 발명하고 도입해 이 모든 것이 장기적 사고나 관점을 기르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_본문 71쪽, ‘셀링 숏: 자본주의의 가차 없는 단기주의’ 에서

위기를 겪고 난 뒤, 장기 계획들이 수립되곤 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뉴딜정책을 시작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은퇴자연금에서부터 아동노동의 종식에 이르는 사회 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유엔, 유럽연합, 영국의 국민 보건 서비스 설립을 통해 시민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진보적인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의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존재할 때가 많지만 늘 그렇지는 않았다. 과거와 현재에 중요한 것을 보존하고 싶은 욕망이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닌 유산을 보존하려는 시도 또는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이 파괴되거나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을 수립하려는 시도 등이 그렇다.
_본문 106쪽, ‘정치적 압박과 민주주의의 최대 결함’ 에서

위기를 겪고 난 뒤, 장기 계획들이 수립되곤 했다. 루즈벨트 대통령은 대공황 이후 미국 경제를 일으키기 위해 뉴딜정책을 시작하고, 국가가 지원하는 은퇴자연금에서부터 아동노동의 종식에 이르는 사회 변화의 초석을 마련했다.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세계 각국 지도자들은 유엔, 유럽연합, 영국의 국민 보건 서비스 설립을 통해 시민에게 보다 안정적이고 진보적인 세상을 만들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정치적 결정의 배경에는 경제적인 이유가 존재할 때가 많지만 늘 그렇지는 않았다. 과거와 현재에 중요한 것을 보존하고 싶은 욕망이 미래에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면 역사적인 중요성을 지닌 유산을 보존하려는 시도 또는 아름다운 풍경과 자연이 파괴되거나 개발되는 것을 막기 위해 국립공원을 수립하려는 시도 등이 그렇다.
_본문 106쪽, ‘정치적 압박과 민주주의의 최대 결함’ 에서

디지털 시대의 도래는 이러한 습관과 규범을 더욱 강화했다. 인터넷의 도움을 받아서 뉴스 사이클은 짧아지고 커지고 끝없이 무한 반복된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을 이 순간에도, 온라인에서 분노를 자아내는 가장 주목받는 뉴스 중 다수는 지금부터 10년 정도 지나면 거의 기억조차 나지 않는, 좀 더 광범위한 역사 속 이야기에서 추가된 주석 중 하나에 불과해질 것이다. 저널리즘의 상당 부분은 세상사의 단면만을 보여준다.
_본문 129쪽, ‘정치적 압박과 민주주의의 최대 결함’ 에서


“미래를 생각할 줄 아는 능력은 인간을 동물과 차별화하는 가장 중요한 요인 중 하나다. 이 능력은 시간이 흐르면서 점점 더 중요한 요인으로 자리매김했다”라고 러셀은 주장했다. 농업의 등장에서부터 법의 수립, 교육과 통치에 이르기까지 미래를 장기적인 관점에서 접근할 수 있었기 때문에 인류는 오랜 역사 동안 많은 업적을 달성할 수 있었다.
_본문 153쪽, ‘시간을 기록하는 유인원’ 에서

실업이나 불평등과 같은 현재에서 가까운 미래의 문제는 먼 미래라고 느껴지는 미래의 문제보다 훨씬 더 구체적으로 느껴진다. 만약 현재 문제들이 고통을 가져오면 그러한 문제를 우선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인간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미래의 나와 타인의 잠재적 고통을 무시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1980년대 영국 철학자 데렉 파핏이 말한 대로, “우리가 먼 미래의 고통을 상상할 때, 그 고통이 덜 생생하고 덜 진짜같다고 상상하거나 덜 고통스러울 것이라고 착각한다.”
_본문 173쪽,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심리학’ 에서

결국 이러한 편향들은 대체로 일상생활에서도 작용한다. 우리 뇌는 세상을 예측하는 데 도움을 주는 패턴을 만들기를 선호한다. 예를 들어 만약 백신의 부작용을 경험한 친구들이 주변에 많다거나, 타는 버스가 3일 연속해서 늦게 도착했거나, 살면서 제프라는 이름의 남성을 3명 만났는데 모두 형편없는 사람들이었다면, 이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당신의 예측을 편향하게 만들 수 있다. 즉 앞으로 당신은 백신을 맞으면 부작용을 경험할 것이고 내일도 버스는 늦게 올 것이며, 다음에 만나는 제프라는 남자는 양아치일 것이라고 믿을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_본문 180쪽,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의 심리학’ 에서

그러나 나는 그 나무와 얽히고설킨 가지들 옆을 지날 때마다 이후 지금까지 내내 날 인도해준 시간의 진실을 생각하곤 한다. 과거는 하나일지 몰라도 미래는 언제나 복수라는 사실을. 그 진실을 알게 되면서 목적의식도 생긴다. 그것은 미래라는 시간의 궤적을 바라보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살아 있는 동안 여러 세대와의 파트너십에서 여전히 나의 역할이 있음을 알려준다.
_본문 253쪽, ‘유쾌한 공포: 먼 시간의 숭고함’ 에서

생각 역시 후대에 물려줄 확실한 방법이 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을 종교에서 찾을 수 있다. 대다수 종교는 물리적 인공물, 예를 들어 신을 숭배하는 장소, 유물, 신성한 물품 등을 갖고 있다. 그러한 인공물이 믿음 체계를 오랫동안 지속될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아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이다. 산업주의 시간관과는 다르게, 종교에서는 해당 종교의 장생을 도모하는 행동이나 행태에 초점이 맞춰진다. 종교 자체와 해당 공동체의 관행, 윤리적 가르침과 그 종교에 소속된 세대 간 유대 모두를 강조한다. 나는 이를 연속성의 시간관이라고 한다. 인류가 시간을 장기적 관점에서 바라봤다는 가장 오래된 증표 중 하나다.
_본문 263쪽, ‘시간관: 종교, 의식, 전통에서 배우는 교훈’ 에서

우리는 지리적으로 아주 먼 사람들에게는 물론 시간적으로 먼 사람들에게도 도덕적 의무를 갖고 있다. 공감과 책임의 동그라미는 공간은 물론 시간을 초월해 확대되어야 한다.
_본문 293쪽, ‘장기주의-미래 세대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는 도덕적 주장’ 에서

미래 세대에 선물을 하게 된다면 어떤 선물을 남기고 싶은가? 시각 예술가 케이티 패터슨이 남기고 싶은 메시지는 독특한 문헌이다. 패터슨이 추진한 ⟨미래도서관⟩ 프로젝트는 2014년에 시작됐다. 작가는 일 년에 한 번 원고를 이 도서관에 제출한다. 그런데 이 원고는 2114년에나 읽을 수 있다. 그들의 책은 노르웨이 오슬로 인근 노드마카라는 특별한 숲에서 자란 천 그루의 나무로 제작된 종이에 인쇄될 것이다. 2021년 현재, 짐바브웨 소설가 치치 단가렘바, 베트남계 미국인 시인 오션 브엉, 노르웨이 작가 카를 오베 크나우스고르, 한국의 한강, 아이슬랜드 작가 스혼, 영국의 소설가 엘리프 샤팍을 포함해 모두 8명의 작가가 참가 신청을 했다. 캐나다의 마거릿 애트우드는 ⟪스크리블러 문⟫을 기고했으며, 데이비드 미첼은 ⟪나에게서 시간이 빠져나간다⟫을 제출했다. 이 소설들 모두 100년 동안 공개되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우리 후손들만이 읽을 수 있다.
_본문 364쪽, ‘상징과 이야기가 지닌 설득의 힘’ 에서

장기적 관점의 추구를 혼자서 할 수 없다는 게 중요하다.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는 과거와 미래의 다른 사람들의 사고와 경험을 기반으로 살아간다. 이러한 협력을 통해 혼자서는 보고, 듣고, 느낄 수 없는 통찰력을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미래는 우리의 시간관의 진화에 전환점이 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장기적 사고를 수용하지 못하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 종을 멸망시키게 될 것이다. 반대로 시야를 수백만 년 이후로 확장할 수 있다면 번영의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만일 앞으로 백 년 뒤에도 번영을 구가하기를 원한다면 지금의 시간관을 바꿔야만 한다. 즉 현재의 두드러진 경험과 멀리서 밝게 빛나는 미래의 궤적 사이, 그 간격을 줄여야 한다
_본문 396~397쪽, ‘먼 미래의 문명’ 에서

>>>

내가 인본주의, 현대철학에 큰 관심이 없어서인지
책 내용들이 크게 와닿지는 않았다.

특히 사례 1,2,3 등을 통해 저자의 가설을 뒷받침하려는 서술 구조는
내가 좋아하는 문법은 아니다.

장기적 관점에 대해 물어보려면 천문학자에게 갔어야 하는데,
내가 엉뚱한 장소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했던게 아닐까.

초를 다투는 현 시대에서
우리 뇌는 시시각각 반응하도록 훈련되어버렸다.

저자가 언급한 long view를 갖기 위해서는
특단의 훈련이나 관점이 필요할 듯 하다.

그래도 간만의 이러한 부류의 자기계발서(?!)를
접하게되어 새로운 자극이 된 것 같다.

andante espressivo
내가 좋아하는 템포인데,
세상의 방식과는 조금 다른 듯 하다.

반응형
Posted by ThyArt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