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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9월 두란노 출판사에서 발행된 기독교 서적이다.
종이책으로 구입하여 지난 한두달 음미하며 읽어갔다.

교보문고 홈피에서 발췌한 책 속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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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3쪽 중에서〉
“당신의 방법이 잘 통하고 있나요?” 이 질문이 너무 두루뭉술하게 들리는가? 그렇다면 좀 더 구체적으로 물어보겠다. 잠시 시간을 내서 다음 질문에 답해 보라.

*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그들이 말하는 동안 당신이 잘 경청하는지 물어보면 그들은 뭐라고 대답할까?
* 밤에 잠을 이루기가 힘든가? 혼미한 상태로 깨어 있지는 않은가?
* 아침 시간의 처음 15분을 어떻게 사용하는가?
* 밤에 잠들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는 것은 무엇인가?
* 가장 최근에 성경을 읽고 묵상한 적은 언제인가?
* 취미 생활에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몇 시간을 투자하는가?
* 공과금 납부나 이메일 답장 같은 간단한 일을 자꾸만 잊어버리는가?
* 약속을 잘 지키지 못하는가?
* 지금 읽지 않거나 답장하지 않은 문자 메시지가 얼마나 많은가?
* (부모라면) 자녀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이름을 알고 있는가?
* 사람들에게 전에 비해 쉽게 짜증과 화를 내는가? 잘 모르겠다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보라. 사람들이 빨리 답하지 않거나 그들의 답이 당신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이 난다면 답은 뻔하다.
* SNS와 기도 중 어느 것에 더 많은 시간을 사용하는가?
* 가장 최근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했던 적은 언제인가?
* 몸무게가 좀 늘었는가?
* 지난 7일 동안 운동을 몇 번이나 했는가?
* 요통이나 두통, 소화불량이 심해졌는가?
*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라는 말에 너무 바빠서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답한 적이 얼마나 많은가?
* 한 달에 몇 번이나 섬기는 일에 자원하거나 그런 일을 찾는가?
* 마지막으로 책을 읽은 적이 언제인가?(이 책은 막 읽기 시작했으니 빼고 답하라. 어쨌든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 혼자 있고 싶을 때가 점점 많아지는가?
* 당신의 기여와 노력을 사람들이 몰라준다고 느끼는가?
*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떨쳐 내기 위해 어디에 가거나 무언가를 하고 있는가?
* 이런 질문들이 얼마나 부담스럽고 짜증나는지 1에서 10점 사이로 점수를 매겨 보라.


〈134쪽 중에서〉
우리 대부분의 문제점은 자신의 방법이 통하지 않을 때마다 생산의 노력을 배가한다는 것이다. 우리의 본능은 결과를 만들어 내기 위해 더 노력하기 시작하는 것이다. 가장 합리적으로 보이는 등식은 ‘더 큰 노력=더 많은 생산’이다. 이 전략이 통하지 않을 때 우리는 낙심하고 좌절하고 불안해하고 쉬이 지친다. 예수님은 모든 것이 연결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당신과 나를 포함한 모든 제자가 절대 잊지 않기를 원하신다. 생산이 아닌 연결이 핵심이다. 바라는 목표를 달성하는 것보다 예수님 안에 거하는 것이 우선이다.

〈168-169쪽〉
실제로 한 포도원 주인과 온종일 시간을 보내고 난 뒤로 “아이로”의 정의가 더욱 선명하게 다가왔다. 나는 그에게 가지들을 어떻게 돌보는지 물었다. 그의 말을 듣고, 더 중요하게는 그의 행동을 관찰하면서 농부로서의 하나님에 관해 더 분명한 이미지를 얻게 되었다. 그 농부는 ‘포도나무에 붙어 있긴 하지만 열매가 없는’ 가지를 바라본다. 이 가지는 주변에 가득한 잡초와 흙에 뒤덮여 시들어 비실대고 있다. 하지만 나무에 붙어 있는 한 희망은 있다. 그래서 그다음 농부는 어떻게 하는가? 시들어 늘어진 그 가지를 조심스럽게 들어서 흙과 잡초들로부터 떨어뜨려 놓는다. 그리고 가지에 묻은 흙을 털어 내고, 살아날 수 있도록 다른 가지들과 잘 엮어 놓는다. 농부의 목표는 시든 가지들을 “아이로”하여 가지끼리 단단히 엮어 열매가 자랄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의 방법이 통하지 않아 흙과 잡초로 뒤덮일 때 은혜로운 마음과 부드러운 손길로 우리를 들어 올리시는 분이 있다. 한때 시든 가지였던 나는 이런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드릴 뿐이다. 하나님은 흙과 잡초로 뒤덮인 나를 보고 은혜로운 손으로 들어 올려 세상 먼지 가득한 흙을 털어 내셨다. 그러고 나서 내가 자라 다시 생명을 경험할 수 있는 곳에 나를 두셨다.

〈186-187쪽 중에서〉
하나님은 우리가 세상적인 기준에서 더 성공할 수 있도록 가지치기하시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그래서 제게서 이 직장을 거둬 가신 건가요? 연봉이 훨씬 더 높은 다른 직장을 주시려고요?” 이런 시나리오도 역시 가능하지만, 하나님이 열매에 관한 세상적인 정의에 따라 역사하신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철저히 오산이다. 하나님은 가지치기를 하실 때 분명한 열매들을 염두에 두고 계신다. 그 열매들은 바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다(갈 5:22-23).
하나님은 우리의 궁극적인 선을 위해 우리를 가지치기하신다.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좋은 것, 진정으로 좋은 것이 반드시 이 세상에서 ‘좋게’ 보이거나 느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진정으로 좋은 것은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안에 거하는 것이다. 요한복음 15장에서 몇 구절 뒤를 보면 예수님은 하나님이 그분의 영광을 위해서도 우리를 가지치기하신다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8절).

〈209-210쪽 중에서〉
때로는 특정 문제에서 남들이 우리 의견과 달라서가 아니라 그들 ‘자체’가 문제여서 받아 주기 힘들 때가 있다. 그들은 다른 정도가 아니라 정말 이상하다. 내 생각에는 다른 가지들을 이상하게 여겨서 그저 홀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으려는 가지들이 많다고 본다. 여느 가정처럼 어느 공동체에나 좀 이상한 사람들, 피곤하게 구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속으로는 다들 인정하는 사실을 말해 보겠다. 교회 안에도 이상한 사람들이 있다. 물론 다수가 그렇지는 않다. 1,000명이 다니는 교회에 한 5퍼센트쯤, 그러니까 50명 정도가 이상한 사람들일 것이다. 너무 많은 것처럼 느껴지는가? ‘우리 교회에서는 이상한 사람을 한 명도 보지 못했는데?’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가 있다면 이런 말을 해서 좀 그렇지만…… 바로 ‘당신’이 그 이상한 사람일 가능성이 있다! 여하튼 이 사람들 대부분은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에도 이상한 사람들이었다. 예전에는 이 사람들을 덜 이상해지도록 도우려고 했지만 언제부턴가 그들의 이상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가족이기 때문이다.

〈223쪽 중에서〉
예수님의 제자로서 우리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을 마주한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은 망가진 세상과 악한 육신의 정욕에서 벗어나 회복된 삶으로 나아가는 첫 번째이자 가장 중요한 단계다. 문제는 우리가 완전한 회복을 경험하기 전까지 문제 많은 세상 속에서 충성스럽게 인내로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대부분은 잘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시간이다. 기다리다 보면 삶의 파도가 올지도 모른다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온다.

〈227쪽 중에서〉
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이런 식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하나님이 저 멀리 하늘 위에서 틱톡을 클릭하면서 우리의 고통을 보면서 즐거워하신다고 말이다. 시편 34편 18절은 하나님의 성품을 밝히 보여 준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우리의 삶 속에 고통이 있다는 것이 하나님이
계시지 않다는 증거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고통이 있는 곳에서는 오히려 하나님이 우리와 더 가까이 계신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더 깊이 연결되도록 (때로) 생명의 거대한 파도를 일게 하신다. 고난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전에 없이 더 분명하게 발견하고 그분과 더 깊고 온전하게 연결된다.
〈228쪽 중에서〉
농사에서 거름은 건강과 성장을 촉진시키는 효과적인 비료다. 거름은 기분 좋은 냄새를 풍기지는 않지만 더 많은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 사용된다. 인생에서 거름이 뿌려지는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의 본능은 최대한 빠르고도 고통 없이 그 순간을 지나려고 할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끝까지 그분 안에 거하라고 누누이 말씀하셨지만, 거름에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가 가장 하기 싫어하는 일은 성장을 위해 그분 안에서 마냥 기다리는 것이다. 좋은 열매를 맺는 건강한 가지가 되려면 거름이 충분히 땅에 스며들어 제 기능을 할 때까지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농부이신 하나님이 성장을 촉진시키기 위해 당장은 불편한 뭔가를 하락하신 것이라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거름 앞에서 조급해하는 사람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 힘든 일이 일어나면 나는 최대한 빨리 그 상황을 해결하기를 바란다.

〈239쪽 중에서〉
또 다른 흔한 가짜 포도나무는 ‘나 포도나무’다. 갖가지 가짜 포도나무와 연결되려고 시도한 뒤 우리는 나 자신에게 절실히 필요한 힘과 영양분을 제공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래서 이제 자기만을 믿기로 결심한다. 그때부터 자조와 개인적인 성장에 집착하기 시작한다. 운동과 영양 섭취, 자기 관리에 힘을 쏟는다. 물론 이것들 역시 좋은 것들이다. 하지만 자신에게 소망을 두면 반드시 실망하게 되어 있다.

〈250쪽 중에서〉
농부는 잘린 가지를 포도나무에 연결하기 전에 막대기에 붙어 있는 잔가지와 순, 잎사귀 같은 불필요한 것을 전부 제거한다. 막대기 하나만 딱 남기고 나서 매우 특별한 기술을 사용하여 그 막대기를 포도나무에 연결시킨다. 먼저 포도나무에 홈을 판다. 막대기가 다시 연결될 수 있도록 포도나무에 상처를 낸다. 이 기술을 뭐라고 부르는지 아는가? 피 흘리기(bleeding; 일비현상).
농부는 파여서 수액이 쏟아져 나오는 포도나무 홈에 막대기를 접붙여서 연결시킨다. 포도나무는 문자 그대로 피를 흘림으로써 한낱 막대기가 진짜 가지가 될 길을 마련해 준다. 시간이 지나 포도나무에 가득한 영양분이 죽은 막대기였던 그 가지로 흡수되어 다시금 열매를 맺게 한다. 혹시 아직도 눈치채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서 설명하면, 예수님은 죽은 막대기가 산 가지가 되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못 박혀 찢기고 피 흘리셨다. 참포도나무이신 예수님은 베어져 아무 쓸모도 없어 보이는 막대기, 다시 가지가 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 막대기를 위해 구원의 길을 마련해 주셨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진정한 연결을 완성하는 단 하나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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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요한복음 15장에서 언급한 포도나무와 그 가지에 대한 해석에서 시작하여 마무리한다.
마침, 올해 내가 가장 묵상을 오래하고 있는 장이다.
성경이란 참 대단하다. 그 말씀의 깊이란 인간 지혜로 다 설명하기 어려울 때가 많다.

책 제목도 마음에 들고, 
미국 목사님(Kyle Idleman)이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동양/한국 사회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이 많다.

저자가 언급한 성경 말씀을 다시 들여다보며,
묵상하고 되새기는 시간은 유의미했다.

저자는 '내 영혼의 계기판'이라는 직관적인 개념을 가져온다.
낙심 눈금판, 분노 미터기, 피로 경고음, 불안 경고등.

낙심, 분노, 피로, 불안.
최근 몇년간 내 업무를 지배했던 단어들이다.
덕분에 이제는 인간적인 방법은 내려놓은 상황에 가깝다.

예수와 나의 샅바 싸움이라고 깨닫고 있다.
일대일 배틀...이라고 하기엔 교만에 가까운 표현인 듯 하고,
피조물인 내가 까불고 있는 형태에 가깝다.

큰 포도나무에 달라붙어 있는 연약한 가지에 가까운 내가
어찌 감히 그럴 수 있겠는가.

삶이라는 소명 아래에서,
인간적인 고뇌를 하고 있을 뿐이다.

세상의 소금 한 줌 그리고 연약한 등불 하나라도 되도록 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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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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