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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난스러운 분위기에는 C장조를, 우아한 분위기에는 G장조를 주로 사용했고, 같은 단조라도 쓸쓸한 느낌일 때는 주로 A단조, 격
쇼팽은 자신을 ‘F단조’와 가장 닮았다고 했다는데 그의 최후의 곡이 된 마주르카 역시 F단조다.
<피아노 소나타 7번 D장조 Op.10-3> 중 2악장은 그런 긍정성을 싹 뺀, 매우 드문 베토벤의 작품 중 하나다. ‘mes...
피아노도 오케스트라도 이제는 모두 442Hz를 표준으로 하고 독일 등 서유럽에서는 심지어 444Hz를 사용하기도 한다.
베토벤은 ‘자유에의 쟁취’, 슈베르트는 ‘절망 속의 희망’, 슈만은 ‘사랑’, 쇼팽은 ‘그리움’, 브람스는 ‘결핍’, 차이콥스...
스트라빈스키와 쇼스타코비치가 현실과의 정면승부를 표방했다면 프로코피예프는 정반대로 무한의 에스카피즘을 그렸다
프로코피예프의 음악이 영원히 깨지 않을 꿈속에 박제된 최후의 낭만이라면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은 그냥 그 순간의 참혹한 현장들이었다
주목 받는 예술만 좇기보다는 스스로 진정한 가치를 찾아보고자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예술을 사랑하는 자세일 것이다.

 

=>[나의단상]

작곡가마다 키워드가 있다는 점을 놀라웠으며 이를 수긍할 수 있었다. 일례로 나는 더 이상 베토벤 교향곡을 즐겨 듣지 않는다. 당위성, 의지, 고뇌 등이 담긴 그의 작품은 휴식을 갈구하는 내게 더 이상 와닿지 않는다. 요즘 쇼팽, 슈만 곡을 통해 잔잔함을 만끽하고 있다. 수동적이 아닌 능동적인 예술 활동은 생각만큼 쉽지 않다. '12년 즐겨 연주하던 우쿨렐레와 거라지밴드는 먼지 속에 파묻혀 가고 있다. 그 당시의 열정과 호기심이 다시 살아나지 않는다. 이사 후에 주변 경관을 그려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고 있는데, 실제로 이루어질 지는 잘 모르겠다. 색상에 대한 감이 떨어지는 내게 미술은 음악보다 매우 난해한 영역이다. 자잘한 예술 행위가 나를 이 메마른 현실에서 구제할 것임을 알고 있지만 막상 손에 펜이 잡히지 않는 이유는 뭘까. 음악가가 대중을 위해 쉽게 풀어 쓴 이 에세이집이 마음에 들었다.

평점은 5점 만점에 4점.

한줄서평: "내 창의성과 욕구를 분출할 시공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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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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