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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0년대 중반, 젊은 헤밍웨이가 프랑스 파리에서 남긴 기록들이다.

회고록이자 수필이다.

원제는 'A moveable feast'인데, 어떤 의미로 지은건지 저자에게 물어보고 싶다.

부활절처럼 매해 날짜가 달라지는 부정기 축제일을 의미한다는데, 그건 표면적인 상징일 듯 하다.

 

요즘 우리 아이가 파리에 가보고 싶다고 얘기해 이 책을 펼쳐보았다.

아, 그리고 프랑스 파리는 그냥 왠지 매력적이지 않은가.

교보문고 홈피에서 발췌한 책 속의 몇몇 내용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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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나는 평생 파리를 사랑했습니다.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분위기 덕분이 아닐까요. 아직도 파리에 다녀오지 않은 분이 있다면 이렇게 조언하고 싶군요.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거라고.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헤밍웨이의 인터뷰, 옮긴이의 말 <어니스트의 화양연화> 중에서

한 여인이 카페로 들어와 창가의 테이블에 홀로 앉았다.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다. 빗물에 씻긴 듯 해맑은 피부에 얼굴은 방금 찍어낸 동전처럼 산뜻했고, 단정하게 자른 머리카락이 새까만 까마귀 날개처럼 뺨을 비스듬히 덮고 있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존재는 내 집중력을 흩어놓고 마음을 설레게 했다. 내가 지금 쓰고 있는 글에, 혹은 다른 글에라도 그녀를 등장시키고 싶었지만, 거리와 카페 입구가 잘 보이는 방향으로 앉아 있는 것으로 보아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음이 분명했다. 나는 다시 글쓰기를 계속했다. 연필이 저절로 종이 위에 글을 써나가고 있었고, 나는 그 흐름을 따라잡느라 애를 먹었다. 럼주를 한 잔 더 주문하고 이따금 고개를 들 때마다, 혹은 받침 접시에 대고 연필을 깎을 때마다 나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여인이여, 그대는 내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당신이 누구를 기다리고 있든, 그리고 내가 당신을 다시는 보지 못한다 해도, 지금 이 순간 당신은 나의 것입니다, 라고 나는 생각했다. 당신은 내 것이고, 파리도 내 것이고, 나는 이 공책과 이 연필의 것입니다….
1-1. 〈생 미셸 광장의 기분 좋은 카페〉 중에서

 



그러나 때로 새로 시작한 글이 전혀 진척되지 않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면 벽난로 앞에 앉아 귤 껍질을 손가락으로 눌러 짜서 그 즙을 벌건 불덩이에 떨어뜨리며 타닥타닥 튀는 파란 불꽃을 물끄러미 바라보곤 했다. 그렇지 않으면 창가에서 파리의 지붕들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말했다. ‘걱정하지 마, 넌 전에도 늘 잘 썼으니, 이번에도 잘 쓸 수 있을 거야. 네가 할 일은 진실한 문장을 딱 한 줄만 쓰는 거야. 네가 알고 있는 가장 진실한 문장 한 줄을 써봐.’ 그렇게 한 줄의 진실한 문장을 찾으면, 거기서부터 시작해서 계속 글을 써나갈 수 있었다.
1-2. 〈스타인 여사의 가르침〉 중에서

 

그래도 당시 우리는 스스로 가난하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았던 것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보다 우월하다고 스스로 자부했으며, 부자들을 경멸하고 불신했다.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속옷 대신 스웨터를 입는 것이 내게는 전혀 이상하게 여겨지지 않았다. 그런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자들뿐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값싼 음식으로 잘 먹고, 값싼 술로 잘 마셨으며, 둘이서 따뜻하게 잘 잤고, 서로 사랑하고 있었다.
1-5. 〈덧없는 봄〉 중에서

밤새 우리는 각자 두 차례나 잠에서 깨었지만, 이제 아내는 달빛을 받으며 평온하게 단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이 강박관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덧없는 봄이 찾아왔음을 발견하고, 염소 몰이꾼의 피리 소리를 듣고, 경마신문을 사려고 밖으로 나갈 때만 해도 인생은 더없이 단순한 것 같았는데…. 그러나 파리는 아주 오래된 도시였고 우리는 너무 젊었으며 이 세상에 그 무엇도 단순한 것은 없었다. 가난도, 갑자기 생긴 돈도, 달빛도, 옳고 그름도, 달빛을 받으며 곁에 잠들어 있는 한 사람의 고른 숨소리마저도….
1-5. 〈덧없는 봄〉 중에서

그러나 나는 소설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 올 때까지 느긋하게 기다리기로 했다. 절대로 생계의 수단으로 소설을 써서는 안 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그것밖에 없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전혀 없을 때 나는 소설을 쓸 것이다. 따라서 나는 더 많은 압박이 쌓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기다리는 동안은 우선 내가 잘 아는 주제에 대해 긴 글을 써봐야 할 것이다.
1-8. 〈배고픔은 훌륭한 교훈이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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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좋아하는 작가 스콧 피츠제럴드 이야기가 중간중간에 계속 나와 재미있었다.

피츠제럴드의 대표작으로는 위대한 개츠비, 벤자민 버튼의 기이한 사건(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등이 있지.

헤밍웨이도 굴곡 많은 삶을 살았지만, 그의 친구 스콧도 만만치 않다.

작가들은 참 술을 좋아한다.

알코올, 이성, 예술.

 

2차 세계 대전을 기점으로 문화 예술의 중심이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뉴욕으로 서서히 이동한다.

즉, 전 세계의 예술가들이 파리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전후 시대에는 상당수 뉴욕 핫도그를 먹게 된다.

그 변곡점에 헤밍웨이는 프랑스 파리에 머물렀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도 미국인 입장에서 서유럽은 탐구, 동경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특히, 파리 특유의 똘레랑스(tolerance)는 매력적이다.

파리는 프랑스가 아니라고 한다. 파리를 벗어나 시골로 가야지 프랑스가 보인다고 하지.

 

지금은 쥐가 길을 건너고 악취나는 Paris지만,

당시에는 조금 더 낭만적이었을 듯 하다 (물론 악취는 더 심했을 것 같다).

 

내가 프랑스 파리를 마지막으로 가본 것은 1996년 여름으로 기억한다.

중학생의 눈에는 서유럽은 덥고 클래식하고 비현실적이었다.

수많은 서양인들 그리고 아기자기한 차량들은 매우 이질적으로 다가왔다.

콧대 높은 서유럽만의 문화,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문명의 힘이 느껴진다.

수백년 간 우위에 있었던 레거시(legacy)는 많은 시간이 흘러도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특히, 문화/과학/예술 분야의 역사 흐름 속에서 서유럽의 뿌리는 견고하다.

아무리 여러 학자가 다른 관점에서 역사를 써가려고 해도, 우리 인류의 시선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우리 현대인도 가끔 쉬고 싶다.

안식년 그리고 시에스타(낮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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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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