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저자는 미국 역사학자이다. 
그의 관점에서 풀어나가는 반도체 산업의 흐름은 신선하다.

e북을 읽으며 메모한 내용은 다음과 같다 (교보문고 홈피에서 발췌 포함).
>>>

반도체는 아시아 지역에 있는 미국 동반국들의 경제와 정치를 재구성했다. 정치적 극단주의의 온상이었던 도시는 근면한 조립 라인 노동자들이 완전히 바꿔 놓았다.

하지만 HP의 앤더슨은 달랐다. 그가 볼 때 도시바와 NEC는 단지 진지한 경쟁 상대에 지나지 않는 수준이 아니었다. 칩을 시험해본 결과 일본 기업이 미국의 경쟁자보다 질적으로 훨씬 우월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던 것이다.

미국이 한국에 제공한 것은 D램 시장만이 아니었다. 기술도 함께 제공했다. 실리콘밸리의 D램 생산은 거의 파탄 나 있었기에, 최고 수준의 기술을 한국에 전수하는 것을 꺼릴 이유가 없었다. 이병철은 현금이 부족한 메모리 칩 스타트업인 마이크론에 64K D램용 설계 라이센스 계약을 제안했고, 그 과정에서 창업자인 파킨슨과 가까워지게 되었다.

제이컵스, 비터비, 그리고 뜻을 같이하는 몇몇 동료가 모여 무선 통신 회사를 차렸다. 품질 좋은 통신(quality communication)이라는 뜻의 퀄컴Qualcomm이었다. 그들은 더욱 강력한 마이크로프로세서가 등장하여 현존하는 스펙트럼 대역폭 안에 더 많은 신호를 집어넣을 수 있게 되리라는 예상을 하고 승부를 건 것이다. (중략) 하지만 반도체를 이용해 대량의 데이터를 보내는 것은 1990년대 초까지로 틈새 사업처럼 보이는 분위기였다.

무바달라가 새로운 파운드리 기업의 주요 투자자가 됐는데, 첨단 산업보다 석유로 유명한 나라에서 이런 투자를 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중략) 반도체 제조의 최신 기술은 결국 미국 바깥으로 향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었다.

고전 물리학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여겼던 터널링 효과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전자가 물리적 장벽을 뛰어넘어 다른 위치로 가는 그 현상은 트랜지스터의 성능에 심각한 영향을 줄 수밖에 없었다.

너무나 복잡한 나머지 전문적으로 훈련된 ASML 직원이 없다면 작동하지 않고, ASML 직원은 기계의 수명이 끝날 때까지 현장까지 장비를 관리한다. 



모든 디지털 세계는 엔지니어들이 실리콘에서 질주하는 전자의 가장 미세한 흐름을 통제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가능하다. 지 난 반세기 동안 1과 0을 기억하고 처리하는 비용이 10억분의 1 이하로 떨어지지 않았다면 “빅 테크Big tech”는 존재할 수도 없었다. (중략) 오늘날 반도체 공급망은 여러 도시와 국가가 제공하는 부품을 필요로 한다. 그런데 현재 생산되는 거의 모든 칩은 실리콘밸리와 접점을 지니고 있거나, 캘리포니아에서 설계되고 만들어진 도구로 제작된다. 미국의 과학 분야 전문가 풀은 굉장히 넓다. 미국의 과학계는 정부 연구 자금을 먹고 자라며 다른 나라의 최고 과학자들을 낚아채오는 식으로 힘을 기른다. 이것이 기술 우위를 지킬 수 있는 핵심 지식을 제공하고 있다. 미국의 벤처 캐피털사와 주식 시장은 새로운 회사의 성장에 필요한 스타트업 자금을 제공하며, 실패한 회사는 무자비하게 솎아내 버린다. 동시에 세계에서 가장 큰 미국의 소비 시장은 수십 년간 새로운 유형의 칩을 개발하기 위한 연구개발 자금을 대며 성장을 견인하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스스로의 힘만으로 이 모든 것을 이겨 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중 실리콘밸리의 공급망에 깊숙이 파고드는 쪽을 택한 나라는 성공을 거두었다. - 34~35쪽

한국에서 타이완까지, 싱가포르에서 필리핀까지, 반도체 생산 설비를 지도 위에 놓고 보면 마치 아시아 전역에 배치된 미군 기지의 위치를 보는 것만 같았다. 심지어 미국이 베트남에서의 패배를 인정하고 해당 지역의 군사 기지를 철수한 후에도, 태 평양 전역에 흩어진 반도체 공급망은 지속되었다. 1970년대 말이 되자 오히려 공산권이 도미노처럼 무너지기 시작했고, 아시아의 미국 동맹국은 미국과 그 전보다 더 밀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갔다. - 146쪽

1985년 일본 기업이 반도체에 투여한 자본 지출은 세계 자본 지출 총액의 46퍼센트에 달한 데 비해 미국은 35퍼센트에 머물러 있었다. 1990년에는 이 격차가 더욱 벌어졌다. 일본 기업이 반도체 생산 설비와 장비에 투자하는 금액은 전 세계 투자액의 절반에 달했다. 은행이 기꺼이 돈을 내주고 있는 한 일본 반도체 기업의 CEO는 계속 새로운 설비를 지어 나갈 기세였다. - 180쪽

사담 후세인의 이라크를 손쉽게 격퇴해 버린 미국의 새로운 힘은 엄청난 것이었다. 그것을 본 소 련의 군부와 KGB는 위기에 빠졌다. 자신들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 인정하지 못해 갈팡질팡하고 만 것이다. 안보 분야 고위직들이 고르바초프를 겨냥해 맥빠지는 쿠데타를 벌였지만 사흘만에 진압되었다. 통상적인 군사력만 보자면 그리 고통스러운 상황에 놓인 것도 아닌데, 한때 막강한 힘을 자랑했던 국가가 비참한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1990년대 러시아 반도체 산업은 수치스러울 정도로 몰락했다. 러시아의 반도체 생산 설비는 맥도날드의 해피밀 장난감에 들어갈 작은 칩을 만들고 있었다. 냉전은 끝났고 실리콘밸리가 이겼다. - 283쪽​

반도체 제조의 지정학은 1990년대와 2000년대를 거치며 급격하게 변했다. 1990년대 미국의 생산 업체는 전 세계 반도체의 37퍼센트를 만들고 있었지만, 2000년이 되자 그 숫자는 19퍼센트로 떨어졌고 2010년에는 13퍼센트에 지나지 않았다. 일본의 시장 점유율 역시 무너졌다. 한국, 싱가포르, 대만이 각기 반도체 산업에 돈을 퍼부으며 급격히 생산량을 늘려 갔기 때문이다. - 310쪽

TSMC 같은 파운드리 업체가 부상하면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기업은 따로 있었다. 대부분은 그 회사를 반도체 설계 회사로 생각하지도 않는 곳, 바로 애플이었다.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애플은 언제나 하드웨어에 특화된 장점을 지니고 있었으니, 그들이 만드는 기기에 탑재되는 실리콘 칩까지 통제하고 싶어 할 것이라는 점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 애플을 처음 창업했을 때부터 잡스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관계에 대해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 377쪽

하지만 ASML의 극자외선 장비는 비록 대부분 네덜란드에서 조립되고 있다 한들 실제로는 네덜란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핵심 부품은 캘리포니아의 사이머와 독일의 자이스, 트럼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이 독일 기업 역시 결정적인 요소는 미국이 만든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여기서 요점은 이 경이로운 장비의 생산에서 한 나라가 소유권을 주장하며 자부심을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여러 나라가 참여한 지적 노력의 산물이다. - 391쪽

화웨이의 반도체 설계 사업부는 세계 수준의 기술력을 지니고 있음을 입증했다. 그러니 중국의 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실리콘 밸리의 대형 업체들만큼 TSMC의 큰 고객이 될 미래를 상상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만약 2010년대 말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2030년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실리콘밸리와 견줄 수 있는 영향력을 갖게 될 터였다. 이것은 단지 테크 업계와 무역의 이동만 뒤바꾸는 일이 아니다. 군사력 역시 새로운 균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 467쪽

펜타곤과 국가안전보장회의 내부에서 화웨이를 바라보는 시각은 단순한 스파이 활동에 따른 위협 정도가 아니었다. 미국의 관료들은 화웨이가 중국의 스파이 행위를 돕고 있다는 것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으며, 화웨이는 기술 주도권을 두고 벌일 긴 싸움의 첫 번째 전장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 510쪽

아시아와 대만해협에 매달려 있는 세계 경제와 공급망은 이런 아슬아슬한 평화 위에 놓이고 마는 것이다. 애플부터 화웨이, 심지어 TSMC까지 대만해협 양쪽에 투자한 회사들은 절대적으로 평화에 기대를 걸고 있다. 이들 회사가 수조 달러를 투자한 설비들이 대만해협과 선전, 홍콩, 푸젠과 타이페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모두가 미사일의 쉬운 표적인 것이다. 전 세계의 반도체 산업, 더 나아가 반도체를 쓸모 있게 만들어 주는 전자 제품의 조립까지, 그 모든 것이 대만해협과 남중국해 연안에 기대고 있으며 그 비중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곳은 실리콘밸리뿐이다. - 550쪽

한마디로 대만이 재앙을 겪고 나면 그로 인한 경제적 피해는 조 달러 단위가 될 것이다. 우리가 매년 얻을 것으로 예상하는 연산력의 37퍼센트를 잃는 것은 코로나 팬데믹과 그로 인한 락다운이 불러왔던 경제적 재앙보다 훨씬 값비싼 일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반도체 생산 역량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5년 이상이 소요된다. 코로나로 인한 반도체 공급 부족 기간 동안 우리는 신규 5G 네트워크나 메타버스 등의 지연을 경험해야 했다. 하지만 대만이 정상 작동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새로운 식기세척기도 제대로 구입하기 힘든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553쪽​

>>>
말장난을 덧붙여본다면 chip war는, cheap war가 아닌 expensive war에 가까웠다.
1970년대부터 COVID19 발병 전까지 미국은 글로벌화(글로벌 아웃소싱)을 통해 저렴한 원가와 낮은 물가상승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과실을 일본, 한국, 대만, 그리고 중국이 함께 향휴해온 것이다.
금융과 원천 신기술은 미국이 주도하되, 대량 생산과 최적화는 동북아 국가들에게 자연스럽게 위임되었다.

향후 10년은 오프쇼어링이 아닌 온쇼어링, 니어쇼어링 중심의 정책이 대세가 될 것이다.
미국이 모든걸 내재화하기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만, 그 과정에서 상당 부분 편가르기가 완성될 예정이다.
인터넷/모바일 플랫폼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미국이 독과점했지만, 하드웨어 분야는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실리콘밸리가 냉전시대에 소련을 이긴 역사는 너무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소련처럼 붕괴되고 싶지 않은 중국, 중국을 소련처럼 만들고 싶은 미국.
말그대로 신냉전의 시대이다.
지정학적으로 한국, 대만, 일본은 중국과 미국 사이에 위치하고 있다.

나같은 서울의 평범한 직장인은 이 거대한 흐름에 휩쓸려 갈 뿐이다.
헛소리하며 휩쓸리는 것보다는 현실적인 대안을 찾아가며 휩쓸리는게 낫지 않을까.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강대국들 사이에서 적당히 선을 잘 타는게 생존의 방법이다.
똥고집 부려봤자 제일 고생하는건 애꿎은 국민들이다.
실리의 외교, 실리의 경제, 실리의 삶을 지향하고프다.
이 어려운 의사결정을 내리는게 결국 지도자들의 몫이다.
아이러니하지만, 그렇게 우리 사회는 설계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몇백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혁명만 바로보기엔 우리 일상이 너무 소중하다.

원래 반도체 기술을 익히기 위해 잡은 책이었는데,
저자의 의도대로(?!) 역사 관점에서 글로벌 경제를 바라보게 된다.

이제는 반도체 산업의 디테일을 학습해보자!
때가 되었다~

 

 

반응형
Posted by ThyArt
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