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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완성된 작품이 이제서야 한국에서 개봉하다니!
영화가 현대 예술의 정점에 있는만큼, 2010년에는 영화 리뷰도 블로그에 작성하기로 했다.
언론에서 극찬하여 갑자기 한국 종교계에서 이슈가 된 다큐멘터리 영화이다.
역시나 씨네코드 선재 영화관에는 수녀들과 50대 아줌마/아저씨로 가득하였다~



2시간이 넘는 상영 시간에 거의 침묵만이 흐른다. 허나 내게는(나뿐만 아니라 모든 관객들에게) 많은 소리가 들렸다.
자연의 소리, 신의 소리, 믿음의 소리, 배려의 소리, 사랑의 소리, 낮춤의 소리로 가득하였다.
존 케이지의 <4'33"> 연주가 생각났다. 침묵도 음악이며, 관객들의 카오스적인 소음의 합도 음악이라는 그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도시에 사는 현대인이 얼마나 침묵으로부터 멀어져서 소음에 익숙해졌는지 깨달았다. 우리는 침묵을 두려워하며 불안정하게 느낀다. 침묵은 활발함의 반대를 뜻하게 되었으며 이는 곧 고독을 의미하게 되어버렸다. 허나 실제 침묵은 곧 명상이요. 이는 자기 자아와의 시간, 신과의 대화인 것이다. 현대인에게 진정 필요한 것은 더욱더 살아있는 고화질 음이 아니라 침묵이다.

불어로 들리는 찬양과 성경은 낯설고 신비로웠다. 불어로 쓰여진 성경을 사고 싶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해발 1300미터의 알프스 산맥에 위치한 카르투지오 수도원의 일상은 놀라움 그 자체였다. 움베르토 에코의 책 '장미의 이름'에 나오는 중세 유럽 수도원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시간이 멈춘 느낌이었다. 맹인 수도승의 다음과 같은 말이 기억에 남는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눈을 멀게 해준 이유는 다 내가 감당할 수 있기 때문이며, 이로서 하나님의 사랑을 나를 통해 세상에 보여주려는 의미이다", "하나님께 가까이갈수록 나는 행복하다", "요즘 사람들의 삶이 불행한 이유는 하나님과 너무 동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영화 중간중간에 수도승의 얼굴만 확대해서 5초 정도 보여준다. 침묵하는 그들이 얼굴 표정, 눈빛으로 우리에게 무엇인가 말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창조되었나보다. 고행을 택한 그들이 조금 측은해보였다. 하나님은 우리가 많은 사람들 속에서 사랑을 뿌리는 걸 원하시는데, 자신만의 수양을 위해 격리된 곳에서 홀로 하는 신앙생활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산 속에 있는 불교승과 무슨 차이가 있단 말인가. 나는 일상 속에 스며드는 생활 신앙을 옹호하는 편이기에, 그들의 극단적인 금욕주의는 안쓰러워보였다.

영화 중간중간에 열왕기 상 17장이 되풀이되는데, 아직 신앙 공부가 부족해서 어떤 의미인지는 잘 모르겠다. 성경 구절 중에 "주께서 불러주셨기에 내가 여기있나이다"가 반복되었다. 이 부분은 내가 작년에 세례 면접할 때 장로님께서 내게 말씀해주신거라 신기했다. 즉 내가 기독교를 선택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날 선택했다고 하셨다. 또한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포기하지 않는 자는 나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자막이 반복된다.

교대근무로 인한 피로 때문에 나는 5번 정도 쓰러져 잠들었었지만, 영화의 메시지를 이해하는 데에 커다란 걸림돌이 되지는 않았다. 나의 귀와 눈과 마음이 정화된 대단한 영화였다. 이 영화를 본 직후, 왠지 큰소리로 이야기하면 안 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그동안 침묵을 두려워하고 불안해하던 나의 모습을 반성하게 되었다. 침묵/고독/명상이야말로 자신의 허물을 벗고 자기 자아를 탐색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임을 깨달았다.


나의 액션 플랜::
침묵의 순간을 두려워하지 말자.
매일밤 10분간 나 홀로 명상&기도 시간 갖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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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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