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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생명의말씀사에서 출간된 서적이다.
신책을 구입해서 천천히 읽어갔다.
반년에 걸쳐 조금씩 나아갔는데, 최근에서야 완독할 수 있었다.

교보문고 홈피에서 발췌한 책 속의 문장들은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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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자 서문.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p. 12-15 중에서
살아 있다는 것은 희망을 품는다는 것입니다. 그 희망이 실현 가능하지 않거나 지연되기에 염려하게 됩니다. 살아 있는 동안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기 때문에 인간은 고뇌하는 존재입니다.
염려라는 주제에 몰입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가을이 시작될 무렵이었습니다. 좋아하지도 않는 염려는 내가 끌어안은 것도 아니고 내가 뿌리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내가 원한 것도 아니고 싫어서 내친 것도 아닌데, 나도 아닌 것이 마치 나의 일부인 듯 함께 있었습니다. 내가 예배드릴 때는 움직이지 않았고, 간절히 기도드릴 때는 얼른 마음의 동굴에 숨어 나의 기도가 끝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저는 늘 보던 염려라는 놈의 정체가 궁금해졌습니다. 그러자 마음에 한 작정이 섰습니다. ‘내가 네 놈을 영구히 내 마음에서 완전히 없애지는 못할지라도 네 진짜 민낯은 확인을 해야겠다.’
사실 그렇게 말한 것은 저의 굳센 신앙이었고 그 말은 들은 것은 저의 연약한 이성이었으니, 둘 다 제 안에 있어 익숙하지만 낯설고, 또한 낯설지만 익숙한 자아(自我)였습니다. 그래서 이 책은 믿음이 부족한 나 자신에게서 출발해서 믿음과 사랑으로 하나님 품에 다다라 안식을 얻고 다시 평화롭게 나 자신으로 돌아온 자아의 여행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저는 많은 눈물과 기도 속에서 이 책을 썼습니다. 이는 염려하는 나의 약한 신앙에 대한 꾸짖음 때문이었으며,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 몰랐던 나의 무지에 대한 원통함 때문이었습니다.
한마디 말씀에 숨이 멎는 듯하였습니다. “그대는 엄숙하도록 존귀하다.” 저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세상에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좋으셨기에 나를 태어나게 하셔서 지금 여기 살아 있게 하셨다는 사실, 그리고 내가 만세(萬世) 전부터 시작해서 영원에 이르기까지 끝나지 않을 하나님 사랑의 품 안에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세상에 태어나서 아무에게도 이렇게, 때로는 나도 싫은 나를 엄숙하리만치 존귀하게 여기는 사랑을 받은 적이 없고, (이게 저를 더 아프게 했는데) 내가 그렇게 사랑해 준 사람도 없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드넓은 우주를 휘감고 당신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무한한 사랑 안에 있게 하셨다는 사실이 저를 울렸습니다.
하얀 눈이 꽃잎처럼 내리던 겨울에 쓰기 시작해서 벚꽃잎이 흰눈처럼 날리는 봄날에 펜을 놓았습니다. 마침 뜻하지 않은 감염병 사태로 많은 사람들이 염려하는 때에, 이 책도 우리 모두처럼 존재해야 할 이유를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이 책을 읽고 염려를 능히 이기소서.


§ [제1장.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가?] p. 31-36 중에서
염려는 불안에서 오는 감정입니다. 실존주의 철학자들은 인간은 불안을 통해서 자신의 존재(存在)를 확인한다고 보았습니다. 자신을 무엇이라고 규정할 근거도 없고, 그 무엇으로도 변화할 가능성이 있기에 인간은 불안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중략]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에게는 자기를 규정하는 다른 존재가 없으니 자기 존재에 무슨 의미(意味)를 부여하든지 그것은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다는 것입니다. 모든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안 속에 살고 싶어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불안 가운데 염려합니다. 때로 이런 염려는 단지 염려하는 것에만 그치지 않고 두려움에 이르게 하고, 심하면 절망으로 이끕니다.
신자의 마음이 이런 상태가 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빛을 잃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使命)에 대한 자각, 일상의 의미, 인간관계의 가치는 사라져 버립니다. 그리고 자신의 삶의 무게를 감당할 수 없는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하나님께 대한 불충성은 커다란 죄 때문에만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비롯될 때가 많습니다(눅 19:21). 그래서 우리는 염려의 정체를 알고 그것으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길을 배워야 합니다.

염려의 의미
염려에 관한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재물에 대한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마 6:19). 이 구절은 이 땅에서 욕심내어 재물을 모으지 말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맥의 결론을 고려하면 이 말씀은 단순히 재산 축적에 관한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물질을 누리는 것보다 더욱 의미 있는 삶을 살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마 6:33).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에게 하나님의 나라와 의(義)를 구하며 살아갈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이 사명을 따라 살지 못하게 하는 가장 큰 대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환난과 박해 같은 외부적 요인이 아니라, 바로 그 사람 안에 있는 염려입니다. 성경적으로 염려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합당한 염려입니다(마 5:25, 13:29). 고통에 대한 경험은 두려움을 주고, 염려는 그 두려움이 현실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경계심(警戒心)을 갖게 합니다. 우리는 안전에 대한 염려 때문에 교통 신호를 지키고 눈 오는 날 미끄러지지 않도록 조심합니다.
이것들은 합당한 염려로서 자신에 대해서는 성실하게, 타인에 대해서는 올바르고 공정하게 행동하게 합니다. 그러나 자신의 노력이 염려하는 바에 대한 완전한 대비책이라고는 생각하지 말아야 하는데, 이는 합당한 염려라고 할지라도 합당치 못한 마음으로 대함으로써 경건에 손해를 입지 않기 위함입니다. 염려가 되는 상황에 대비는 하여야 하지만, 우리가 의지(依支)하는 분은 하나님뿐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신령한 것들을 위한 염려도 합당한 염려에 포함됩니다(고전 7:32, 9:27, 고후 11:28). 자신의 경건과 교회의 영적 번영, 하나님 나라의 확장과 이웃의 영혼들을 위한 걱정이 경건한 염려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이 일을 위해 애쓰고 노력하지만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그것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염려는 어디서 오는가?
염려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우리는 어떤 일에 대해 지나치게 염려하는 사람에게 “뭘 그런 걸 가지고 걱정하냐?”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그 사람이 염려하는 바에, 우리는 집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것이 있는 사람은 그것을 얻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혹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염려합니다. 그래서 어떤 것을 염려하고 있다는 것은 곧 그것을 사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염려는 ‘자기 사랑’(amor sui, self-love)에서 나옵니다. 그리고 자기 사랑은 교만(superbia)에서 비롯됩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사랑하는 것은 궁극적인 사랑의 대상이 아닌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 옳다고 판단하는 지성(知性)의 우월감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랑’은 자기를 사랑하는 의지(意志)와 자신이 옳다고 판단하는 지성(知性)의 일치에서 생겨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염려를 운명처럼 지니고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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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이있고 난이도가 느껴지는 내용들이었다.
솔직히 한번 읽어서는 그 의미를 다 이해할 수 없었던 것 같다.

하드커버 표지에 'De Sollicitatione'란 라티언 표현이 멋있게 적혀있다.
뒤늦게 알게된 사실인데, 실제로는 '염려'에 대한 주제로 설교하셨던 내용을 모아놓은 것이라 한다.
QR코드를 스캔하면 동영상 설교로 넘어갈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도 너무 좋지만,
가끔은 이렇게 한국인 목회자가 정리한 설교 글도 유익하다
한국 사회, 문화, 사람이 담겨 있다고나 할까.

나는 참 염려가 많은 성격 (또는 기질) 같다.
이 책을 다 읽은 후 나의 염려 습관이 고쳐졌냐고 묻는다면,
아쉽게도 그러하지는 않다.
다만 신앙의 눈으로, 예수님의 관점에서 염려를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또는 '해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언젠가 조만간 이 책을 서재에서 빼내어
다시 훑어볼 날이 오리라 생각한다.

서재의 즐거움이란 그런게 아닐까.
꽂아두었다가 빼내어 페이지를 넘길 수 있는,
또는 예전에 밑줄 그었던 내용을 다시 음미할 수 있는 순간들.

용기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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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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