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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의 평전을 읽는 건 정말 오랜만이다.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평전'이라 하면 과거 민주 열사를 떠올리기 쉽다. 

노동법을 전공한 저자도 그러한 첫인상을 심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단숨에 읽기는 벅찼다.

일단 기존에 알려져있는 베토벤과 상당히 다른 모습이 그려져 있으며, 그의 인생을 프랑스 혁명과 연계해서 해석한 부분이 낯설었다.

 

이 책의 목차는 단순 명료하다.

성장(본 22년), 도전(빈 10년), 갈등(빈 10년), 초월(빈 15년).

위 분류에 비추어볼 때, 서른 초반인 나는 현재 도전기를 보내고 있는 것일까? 베토벤처럼 대기만성의 삶을 누릴 수 있을까? 

나도 모르게 자문하게 된다.


원래 '책속의 한줄'이라는 모바일 앱에 책내용을 메모하다 멈추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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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토벤의 음악 철학}

베토벤은 이미 21살에 '나의 예술은 가난한 사람들의 행복에 이바지하여하 한다'고 썼다.

오직 하나, 음악만이 그에게는 구원이었다. 그는 음악으로 세상을 저주했고, 조롱했으며, 분노했고, 절망하다 마침내는 초월했다. "오직 예술만이 나를 지탱해줄 뿐이다".

베토벤이 가장 중요하게 추구한 것은 사랑이고, 또한 사랑이리라.

베토벤에게 끼친 글룩의 영향은 특히 글룩의 오페라에서 나타나는 극적 표현, 강조, 간결, 그리고 광범하고도 명료한 구성이라는 점이었다.

고고한 우수와 엄숙하면서도 격렬한 힘, 그리고 평안과 고요가 <비창>의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스승인 하이든마저 베토벤을 '무갈 대제'라고 부를 정도였는데 이는 칭송이 아니라 당시 야만의 대명사로 불린 것에 비유한 것이다. 베토벤은 'fp'(=forte piano)라고 표시했는데 이는 '강하게 그리고 곧 약하게'라는 뜻이다. 이는 그야말로 야만적인 것이었다.



{베토벤 주변 이야기}

모차르트는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 1789년의 2년 뒤에 죽었다. 그러나 그 1789년에 베토벤은 19살의 청년으로 프랑스 혁명에 열광했다. 이처럼 두 사람 사이에는 거대한 시대의 변화가 있었다. 불과 14년 차이였지만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다른시대에 속했다.

베토벤에게 자연은 성스럽기조차 한 곳으로 창작의 원천이었다. 조용함과 자유야말로 가장 소중한 재산이고, 자신처럼 시골을 사랑하는 인간은 없다고도 말했다.

교향곡은 본래 '오페라 개막 전의 심포니아'라고 불린 이탈리아 풍의 서곡이었다. 즉 오페라를 보기 위해 온 관중들의 들뜬 마음을 달래기 위해 발랄한 도입부와 느린 무곡과 선율, 그리고 마지막의 빠른 선율로 구성되었다. 그 중에서도 무곡이중심인만큼 지적이라기보다는 오락적인 성격이 강했다.



괴테는 그때 베토벤에게 느낀 감동을 "나는 지금까지 그보다 더 집중력이 강하고 정력적이며 더 내면적인 예술가는 한 명도 보지 못했다"라고 아내에게 썼다.

슈베르트가 횃불을 들었고, 그릴파르처가 추도사를 썼다. 그 추도사에서 그는 베토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그는 참된 예술가였다. 그는 오직 예술을 통하여 그 자신이 되었다."

베토벤은 1819년 2월 빈 시청에 보낸 편지에 "옳게, 또 떳떳하게 행동하는 사람은 오직 그러한 사실만으로써 능히 불행을 견디어 나갈 수 있다는 것을 나는 입증하고 싶다"라고 적었다.

리듬, 멜로디, 하모니가 음악의 기본 3요소이다. 여기에 다른 두 가지를 더할 수도 있다. 그 하나는 음색이고, 또 하나는 형식이다.



{저자의 베토벤학}

이 책은 노동자를 위한 베토벤 평전이다. 내가 새로 짜는 그의 삶은 시대를 날줄로 하고, 음악을 씨줄로 삼아 인간 베토벤을 그려보는 것이다.

롤랑의 책은 시작된 지 몇 쪽만에 그 '가혹한 운명'을 강조하고서 그 점을 끝없이 강조한다. 그러나 베토벤의 삶을 그것만으로 말할 수 있을까?

베토벤의 생애를 일관하는 계몽주의와 자유주의는 그가 본이 속한 라인 지방에서 태어났다는 점과 깊이 관련된다.

'독일 사람들은 숲속의 야만인이다. 그러나 숲속에서 살았기 때문에, 귀만큼은 우리보다 뛰어나다'고 어떤 프랑스인이 말했다고 한다.

독일의 역사에서는 정치적은 자유가 희생된 반면, 문화적인 자유에 의해 학문과 예술이 꽃핀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베토벤은 운명과 대결하여 다시 태어나기 위해 온 세상을 향해 자살이라는 연극을 한 것이었다.

혁명시대는 혁명을 찬양하는 선전예술만을 낳는다. 그러나 진정한 혁명예술은 신념과 회의의 갈등을 표현해야 한다. <영웅>은 바로 그런 갈등을 가장 훌륭하게 보여주는 예술이다.

만년의 베토벤 작품에 대해서는 종교적이라는 해석이 붙으나, 여기서 주의할 것은 그것이 기독교라는 특정 종교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 점이다.

호프만이 베토벤을 낭만주의자로 규정한 이래, 대체로 그를 '종교적, 미적 진실을 표현한 민주적 혁신의 낭만주의자'로 보는 경향이 생겨났다.

프랑스 사회주의자들은 베토벤을 프랑스 국민의 구세주라고까지 칭송하고, 베토벤 음악은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정상의 도덕, 정신적 희생, 고귀한 사상'을 부여해 준다고 했다.

베토벤은 자신이 예술가이고 자신의 작품이 예술품이라고 확실히 인식했고, 분명히 주장했다. 모차르트는 단순히 즐김의 대상이었으나, 베토벤은 숭배의 대상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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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저성장. 노후화 시대. 자본주의 딜레마. 이 시대를 대표하는 음악 아니 예술은 무엇일까?

음악의 치유/창의력/시대정신 기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히 필요하다.

나는 뮤직 테라피의 힘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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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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