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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우리와 어울려 놀거나 싸움질에 끼지 않았기 때문에 아이들 사이에선 그리 인기 있지 않았다. 선생님들 앞에서도 자의식이 분명하고 확신에 찬 어투로 말해서 다른 애들이 마음에 들어 했을 뿐이다. 그의 이름은 막스 데미안이었다. '​

'오늘날에야 알게 되었다.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을 가는 것보다 더 꺼려지는 건 없다는 사실을!'​

'사는 게 너무 편안해서 스스로 생각하지도 않고, 또 자신의 행동을 판단하지도 못하는 사람은 그저 금지된 그대로를 따르게 되지. 그게 편하니까'​

'나는 교회에 받아들여질 준비를 한 게 아니라 전혀 다른 곳, 즉 사색과 인격이라는 교단(敎團)에 받아들여질 준비를 했던 것이다. 지상 어딘가에는 분명 그런 교단이 존재할 테고, 내 친구가 그곳의 대표 또는 대사라고 생각했다.'​

'거기엔 ‘새는 알에서 태어나기 위해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해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갯짓한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라고 쓰여 있었습니다.”'​

'하지만 모든 대화가 극히 진부한 내용일지라도 줄곧 나직하게 내 안의 같은 지점을 내리쳤다. 그 모든 것이 나 자신을 형성하도록 도와주었고, 모든 것이 어떤 껍질이 내게서 떨어져나가는 것을, 알의 외각(外殼)을 깨뜨리는 것을 도와주었다.'​

' 하지만 우리는 우리 안에서 매일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네! 안 그랬다간 우린 아무것도 아닌 게 되니까. 그 점을 잊지 말게! 싱클레어 군, 자넨 이제 열여덟 살이지. '​
'“사랑은 부탁하는 게 아니에요.” 그녀가 말했다. “요구해서도 안 되지요. 사랑하려면 자기 안에서 확신할 수 있는 힘을 가져야 해요. 그러면 사랑은 상대에게 끌려가지 않고, 상대를 이끌어오게 되지요'
'나는 풍요로움과 안락함 속에서 숨 쉬는 걸로는 만족할 수 없었다. 고통과 분주함이 필요했다. 또 언젠가는 이 아름다운 사랑의 형상에서 깨어나 다른 사람들의 차가운 세계에서 다시 홀로, 완전히 혼자 서게 되리라는 걸 짐작했다.'
'그 자신도 다 큰 별종이었던 피스토리우스는 내가 용기와 자긍심을 갖도록 도와주었다. 그는 나의 말과 꿈, 상상과 생각에서 늘 가치 있는 것을 찾아내주었고, 이를 중요하게 받아들이고 또 진지하게 이야기함으로써 내게 모범이 되어주었다.'
'우리가 누군가를 미워한다면 우리는 그 모습에서 우리 안에 있는 무언가를 보고 미워하는 거라네. 우리 자신 안에 없는 건 우리를 자극하지 않는 법이니까.”'
'그런데 우리 인간은 우리 안에 내재된 힘을 몰라! 그걸 모르는 한 나무 쪼가리, 돌덩어리, 기껏해야 짐승 새끼밖에 안 되는 거야! 하지만, 하지만 말이야, 인식하기 시작하면, 인식이라는 첫 불꽃이 밝혀지면 인간은 그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거야'
' 그렇게 나를 그녀에게 바침으로써 나는 정신과 신들에게 자신을 바친 것이다. 내가 어두운 힘에서 끌어냈던 생의 어떤 부분은 나로 하여금 밝은 힘을 되찾게 했다. 내 목적은 쾌락이 아니라 순결이었다. 또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미(美)와 정신이었다.'
'하지만 어떤 사람은 자기 안에 규칙이 있다는 걸 느껴. 그러면 모든 존경받는 사람들이 매일 하는 일이지만 그 사람한테는 금지되기도 하고, 또 보통은 엄격하게 금지되는 일이지만 그 사람한테는 허용되기도 해. 인간은 누구나 자기 자신으로 존재해야 해.”'
'11월 초였다. 그즈음 날씨에 상관없이 생각에 잠겨 짧은 산책을 하곤 했는데, 그 산책에서 어떤 기쁨을 느꼈다. 그 기쁨은 우울함, 세계에 대한 모멸감과 자괴감으로 가득했다. 어느 날, 저녁 안개가 축축이 낀 해 질 무렵, 도시 주변을 이리저리 배회하고 있을 때였다'
'새는 알껍데기 속에서 밖으로 나오기 위해 애써야 한다는 걸요. 뒤돌아 생각해본 다음 스스로에게 물어봐요. 과연 ‘길’을 걷는 게 그토록 어려웠나요? 어렵기만 했나요? 아름답기도 하지 않았나요? 당신은 그보다 더 아름답고 더 쉬운 길을 걸을 수 있었을까요?”'
'세상 사람들의 눈에 표를 지닌 우리는 별난 인간들이었고 심지어 미쳤거나 위험하다고까지 여겨질 수 있는데, 그러한 발상은 어느 정도 타당성이 있었다. 우리는 이미 각성한 사람들이거나 각성하고 있는 사람들로, 우리의 소망은 언제나 온전히 각성하는 것이었다'
'아름다움과 평안함과 감정들로 둘러싸여 살 수 있는 섬. 이런 게 아마도 우리가 생각하던 새롭고 더 높은 곳을 지향하는 공동체의 전주곡임을 예감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행복을 넘어선 깊은 슬픔이 나를 사로잡았다. 이런 행복이 계속될 수 없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 노발리스의 편지와 격언들이 담긴 책이었는데, 많이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굉장히 끌었고 압도했다. 그중 하나가 지금 생각났다. 나는 그 말을 그림 밑에 펜으로 썼다. ‘운명과 감정은 똑같은 개념의 다른 명칭이다.’ 그 말을 나는 이제야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는 내가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내디딘 삶의 발걸음에 대한 것이다. 그 모든 아름다웠던 안식처, 행복의 섬과 낙원에 대한 매력을 들려줄 이야기가 부족한 것은 아니지만, 다시 한 번 그곳에 발을 들여놓는 대신 아득한 광채 속에 빛나도록 놓아두고 싶다.'
'완성된 새는 날카롭고 대담한 새매 형상의 맹금류였다. 몸의 절반 정도는 어두운 색 지구 안에 박혀 있었는데 마치 거대한 알에서 깨어나듯 거기서 나오는 모습이었다. 배경으로는 푸른 하늘이 펼쳐져 있다. 그림을 오래 바라보고 있자니 차츰 꿈속에서 보았던 다채로운 빛깔의 문장 같았다.'
'이 같은 이유로 나는 어린 시절 이야기 중 내게 새로 또 일어난 일, 나를 앞쪽으로 몰아가고 내 자아를 분열시킨 일들만 들려주겠다.그런 자극들은 언제나 ‘다른 세계’에서 왔고, 언제나 두려움과 압력을 가했으며,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했다. 또 언제나 혁명적이었고, 내가 기꺼이 머물고 싶었던 평화를 위협했다.'​
'겁쟁이들은 언제나 두려워하긴 해. 하지만 내 생각에, 넌 원래부터 겁쟁이가 아니었거든. 안 그래? 그렇다고 영웅적인 사람도 아니긴 하지. 아무튼 넌 지금 뭔가를 무서워하고 있어. 어쩌면 그게 사람일 수도 있고. 하지만 어떤 것도 두려워해선 안 돼. 사람을 두려워해서도 안 되지. 절대로! 혹시 너 나를 무서워하고 있는 건 아니지?”'
'붕대를 감는 과정도, 그 이후에 일어난 모든 일들도 아팠다. 하지만 내가 이따금 열쇠를 찾아내어 내 안으로 완전히 침잠하면, 그곳 어두운 거울 안에 운명의 모습이 잠들어 있었다. 그러면 그저 거울 위로 몸을 숙여 나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었다. 거울 안의 모습은 이제 완전히 그와 같았다. 나의 친구이자 나의 안내자인, 그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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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단점과 불교의 장점을 부각시킨 헤르만 헤세의 가치관을 동의하지 않지만, 이 작품은 매우 훌륭한 성장소설이다.
괴테, 토마스 만 등 요즘 독일 문학에 관심이 많다.
주인공 싱클레어 관점에서 쓰여진 이야기인데 책 제목은 싱클레어가 아니다.
나의 10대에 접했던 소설을 다시 음미하는 기분은 묘하면서도 좋다.
10대 사춘기에는 나만 이런 줄 아는데, 이 소설을 읽으면 상당히 위로를 받을 수 있다.

너무 많은 데미안 번역본이 시중에 나와서, 내가 읽은 출판사가 무엇이었는지 헷갈린다.
'책읽는수요일' 출판사, 채민정 역, 2014년판이구나.
번역이 난해한 소설은 아니기에, 어떠한 번역본을 읽던 큰 차이는 없다.

불혹을 앞둔 시점에 재독하게 되어 기쁘다.
알에서 깨어날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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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Thy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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